2009년 성세중화 (66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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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1일,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모택동(毛泽东, 마오쩌뚱)은 중화인민공화국(中华人民共和国)의 수립을 공식 선언합니다.
약칭 중국(中国)이라 불리는 지금의 국가체계가 공식 출범한 것입니다.
이 날을 기점으로 1949년 이전의 시대를 구중국,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를 신중국으로 구분해 부르기도 합니다.
이 차 성세중화는 200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60주년을 기념해 운남의 맹해경운차창에서 생산한 기념병입니다.
60주년을 기념해 차의 중량도 660g 으로 생산했으며, 생산일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 8을 겹쳐 8월 8일로 정했습니다.
일반 병차와의 크기를 비교해 봤습니다. 일반병차 2배 가까운 양이니만큼 크기 차이가 확연히 눈에 들어옵니다. 크기가 크다 보니 1통은 6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표에는 보이차의 간략한 역사와 특징에 대해 기술해 넣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즈음 갑작스런 보이차 투기붐이 잠시 불긴 했지만 2009년 이 때만 해도 아직 많은 중국인들이 보이차의 이름만 들어봤을 뿐 그 실체가 어떤건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정보도 새롭게 받아들여질 만 했습니다.
병면은 그리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황편 또는 노엽처럼 보이는 큰 잎들이 많이 보이고, 어린잎은 별로 보이지 않아 그리 정갈한 느낌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차의 진가는 바로 이 볼품없어 보이는 원료에 있습니다.
숙차는 본디 바로 만들어 바로 마시는 차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만들어서 바로 마시는 것을 그 본분으로 삼는 차입니다. 때문에 보통은 저렴한 원료로 만드는게 보통입니다.
숙차의 제작과정 중 악퇴발효를 위해서는 대개 톤단위의 원료가 들어가게 되는데 일반 대지차(臺地茶)에 비해 몇 배 비싼 대수차(大樹茶)로 제작했다가 혹시라도 제작과정중에 실수가 발생해 손실이 생긴다면 그 뒷감당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9년 당시 신생 차창이던 맹해경운차창은 나름 큰 모험을 하게 되는데요, 바로 얼마 안되는 자본을 긁어모아 대수차를 악퇴발효해 숙차를 만드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기존 차창이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모험을 사서 한 것은 신생업체로 기존 시장, 기존 제품에 비해 차별화된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하는 필요성, 그리고 이 즈음이 2000년대 후반 최악의 보이차 시장 침체기여서 원료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는 것이 한 요인일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태어난 성세중화는 전례를 보기 힘든 대수숙차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시중에는 고수숙차니, 반장숙차니 하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많은 차가 있습니다만, 진실로 포장에 부합하는 명실상부한 숙차는 그 예가 극히 드물다 하겠습니다.
10여년의 시간이 지나, 지금 이 차를 마셔보면 숙향은 개완에서만 잠시 스치듯 지나가고 그외 숙향과 숙미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약간 칼칼한 듯한, 숙차 답지 않은 거친 맛은 경발효 대수숙차로서 성세중화만의 특징입니다. 이 또한 생산 초기에 비해서는 많이 부드러워진 편인데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면 더욱 좋아지겠지요.
최근 몇 년 사이 맛이 완숙해 지고 있으며 자사호로 우릴 경우 얼핏 노생차와의 구분이 쉽지 않을 정도의 풍미를 보여줍니다.
이 차는 여러모로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특징적인 차라 할 수 있고 유통되는 양 또한 극히 적으니 숙차를 즐기시는 분들은 기회가 닿을 때 조금이라도 챙겨두시면 좋겠습니다. 대수차로 만든 숙차의 특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